김구라는 SBS 공채 2기(1993년) 개그맨으로 동창이던 염경환과 함께 데뷔했었습니다. 하지만 무섭고 큰 덩치의 외모때문에 형사나 불량배역을 많이 맡았습니다. 그 때문인지 대중의 인지도는 없었고 개그맨들 사이에서도 인정받지 못했었습니다.
긴 무명 시절을 거치며 그는 공중파 방송대신 인터넷 방송에서 활동을 많이 하게 됩니다. 그때 본명인 김현동 대신 김구라라는 예명을 사용하게 됩니다. 선배 개그맨 주병진이 세운 프랑케슈타인이라는 인터넷 방송국에서 부터 딴지일보의 김구라 황봉알의 시사대담, 김구라의 진실게임, 구봉숙의 도시탈출등에서 출연하였습니다.
이런 방송에서 사회, 정치, 연예계등의 분야에서 음담패설과 욕설, 모욕 그리고 확인되지 않은 루머로 비호감 연예인의 독보적인 위치에 오르게 됩니다.
일반적인 비호감 연예인들과는 차원이 다른 비호감으로 한때는 공중파에 김구라가 보이면 바로 채널을 돌리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인터넷 방송 시절 역대급 비호감으로 그의 청취자들 조차 서서히 등돌릴 무렵인 2004년 그에게 일생의 기회가 찾아옵니다.
그것은 KBS의 윤선원 PD로 KBS 2FM에서 김구라의 가요광장 DJ를 맡기게 됩니다. 특유의 풍부한 잡기성 지식과 팝의 기본적 소양 그리고 걸출한 입담으로 그의 DJ로서 데뷔는 괜찮은평이 많았습니다. 훗날 윤선원 PD는 김구라를 기용하기위해 엄청난 비판과 사내외에서 반대의견으로 시말서까지 쓸뻔 했었다고 했습니다.
그때 방송 초기에는 청취자들의 분노가 극에 달해 많이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김구라에게 윤선원 PD는 정말 일생의 은인이고 그것은 천운따랐다고 하겠습니다.
그 이후 본격적으로 지상파에 진출하게된 그는 라디오 프로그램인 김구라의 초저녁쇼, 김구라, 이윤석의 오징어와 TV 방송인 불량아빠클럽, 스타골든벨에 게스트로 출연하여 인지도를 넓히게 됩니다. 그 이후 MBC의 황금어장 라디오 스타, 세바퀴와 SBS의 절친노트, 라인업, 스타주니어쇼 붕어빵으로 더욱 입지를 다지게 됩니다.
하지만 그의 방송출연이 잦을수록 과거 인터넷방송시절 그의 발언이 다시 회자 되면서 비판또한 증가하게됩니다. 그후 계속 과거 언행에 대한 반성과 사과를 이어갔었고 이미지 개선을 위해 방송출연 했었던 아들 김동현을 적극 활용하기도 했었습니다. 아직은 호불호가 갈리지만 나름 존재감있는 중견 예능인으로 자리 매김했습니다.
그렇지만 2012년 과거 인터넷 방송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했었던 막말이 들춰지면서 그는 활동을 중단하며 자숙의 기간을 가졌습니다. 자숙기간중에 위안부 할머니들을 직접 찾아가 사과하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 5개월의 자숙기간을 끝내고 2012년 9월 tvN 현장토크쇼 TAXI와 화성인 바이러스로 복귀하게됩니다. 2013년에는 JTBC의 예능 남자의 그 물건에서 장성규, 이훈, 이상민과 함께 진행 했었고 그 이후 같은 방송사인 JTBC의 썰전에 출연하게됩니다.